오래전, 고등학교 시절 **‘비트’**라는 영화가 있었다.
지금은 중년이 되었지만, 그 영화 속 정우성과 고소영의 가장 빛나던 시절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그 영화는 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난 꿈이 없다.”
영화 속에서는 꿈이 없어도 젊고 잘생긴 주인공이 반항적이고 멋지게 그려지지만,
나에게 그 말은 현실이었다.
나는 정말로 꿈이 없었다.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보다
어느 대학에 가야 하는지를 더 고민하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소위 ‘스카이’ 대학을 갈 만큼 뛰어난 성적도 아니었고,
뚜렷한 목표도 없었다.
그저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야겠다”는 생각 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짝꿍이던 친구가 말했다.
“배 타는 거 어때? 한국해양대학교 같이 가자.”
그때까지 나는 배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유조선, 컨테이너선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배’ 하면 원양어선이 먼저 떠오르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나는 어쩌다 보니
한국해양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대학생활과 현실은 달랐다.
낭만적인 캠퍼스 생활을 상상했지만
실제 학교는 군대와 다름없는 분위기였다.
“사관학교도 아닌데 왜 이럴까?”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성격상 그냥 흘러가는 대로 버텼고,
결국 배를 타게 되었다.
그러나 승선 생활은 나에게 맞지 않았다.
나는 적응하지 못했고,
의무 복무 기간만 채운 뒤 다짐했다.
“다시는 배도, 해운도 하지 않겠다.”
당시 나는 지금의 아내와 연애 중이었고,
원래는 최소 일항사까지 승선한 뒤
그 경력을 바탕으로 육상 근무를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다.
흥미로운 점이 있다.
주변을 보면
오히려 “평생 배를 타겠다”고 하던 친구들은 일찍 떠났고,
“의무 기간만 채우겠다”던 친구들이
지금까지 계속 배를 타는 경우가 많다.
결국 이 일은
직접 겪어봐야 맞는지 아닌지 알 수 있는 직업인 것 같다.
그렇다면,
배를 꿈꾸는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알고 선택하는 걸까?
가족이나 지인 중에 해양 계열 종사자가 있다면
어느 정도 현실을 알고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졸업 후 처음 마주하는 승선 생활은
생각과 전혀 다른 세계일 가능성이 크다.
지금의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한때 그렇게 싫어했던 배로 다시 돌아와 있다.
젊은 시절 3년의 승선,
그리고 20년 이상의 육상 생활을 거쳐
다시 배를 타기 위해 교육을 받으면서
승선을 앞둔 후배들을 보게 되었다.
그들을 보며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정보의 부족이었다.
교육 과정에서 자기소개를 할 때,
대부분의 후배들은
“소속 선사와 이름” 정도만 이야기한다.
반면 나는
20년의 육상 경험을 이야기하게 되고,
그럴 때면
식사 시간이나 교육이 끝난 뒤
후배들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승선 이후의 삶에 대해 질문을 한다.
생각해보면,
나 역시 젊은 시절 아무런 정보 없이 선택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도
교육 내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오래된 교재가 사용되고,
변화하는 실무를 반영한 교육은 부족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나에게 “배를 타는 것이 어떤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긍정적으로 말할 것이다.
비록 나는 젊은 시절 그 생활이 힘들었지만,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충분히 가치 있는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고등학생들에게 이야기한다면,
조금 조심스럽지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서울의 상위권 대학이 아니라면,
배를 타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요즘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과거와 달리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고,
해운업은
승선 이후에도
육상에서 다양한 기회를 가질 수 있는 분야다.
실제로 내 주변에서도
정보를 충분히 알고 선택한 경우
주저 없이 이 길을 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배를 탄다는 것은
단순히 ‘지금의 직업’이 아니라
- 계속 승선할 것인지
- 혹은 이후의 경력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
까지 함께 고민해야 하는 선택이다.
나 역시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조금씩, 나눠서 해보려고 한다.
'선원에 대하여 > 배를 탄다는 것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배를 탄다는 것... (0) | 2026.05.26 |
|---|---|
| 어떻게 배를 탈 수 있을까? (1) | 2026.03.2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