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탄다는 선택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스**의 주인공 박새로이는 아버지의 복수를 다짐하며 원양어선에 오른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바다로 나아가는 그 장면은,
마치 배를 탄다는 선택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하나의 전환점처럼 보이게 만든다.
아마 많은 사람들에게 ‘배를 탄다’는 직업은 비슷한 이미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세계, 힘든 대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
어쩌면 인생을 단번에 바꿔줄 수 있는 선택. 일종의 ‘치트키’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배는 그런 종류의 공간이 아니다.
배 역시 하나의 직장이고,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곳이며,
무엇보다 종류와 환경이 다양하다.
그래서 ‘배를 탄다’는 선택은 하나로 설명할 수 있는 단순한 길이 아니다.
오히려 그 안에는 생각보다 많은 갈림길이 존재한다.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선택은 상선과 어선이다.
겉으로 보면 둘 다 바다 위에서 일하는 직업이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다른 삶에 가깝다.
상선은 화물을 운반하는 배이고, 어선은 어업에 종사하는 배다.
정의는 단순하지만, 그 안에서의 생활은 크게 다르다.
어선에 대해 깊이 알지는 못하지만,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는 공통적으로 한 방향을 가리킨다.
매우 힘들다는 것이다. 단순히 바쁘거나 고된 수준이 아니라,
몸이 버티기 어려울 정도의 노동 강도를 이야기한다.
실제로 어선을 타다가 몸이 망가져 상선으로 옮긴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사람은 상선에 와서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편해도 되나 싶다.”
이 말 하나로 두 환경의 차이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근무 방식도 다르다.
상선은 하루 4시간씩 두 번의 당직을 기본으로 하고, 그 외 시간에 각자의 업무를 수행하는 구조다.
전체적으로는 육상의 회사 생활과 비슷한 리듬을 가진다.
반면 어선은 물고기를 잡기 시작하면 시간의 개념이 흐려진다.
어획이 이루어지는 동안에는 휴식이 거의 없고,
작업이 끝나도 그물 정리와 같은 일이 이어진다.
잠을 거의 못 자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급여 구조 역시 다르다.
상선은 계약된 임금을 받는 구조라 안정적이다.
반면 어선은 어획량에 따라 수입이 달라진다.
많이 잡히면 많이 벌고, 그렇지 않으면 기대에 못 미칠 수도 있다.
겉으로 보면 어선이 더 많이 벌 수 있는 구조처럼 보이지만,
그만큼의 노동 강도와 건강 문제까지 고려하면 단순한 비교는 어렵다.
다음으로 마주하는 선택은 갑판부와 기관부다.
이건 배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갑판부는 배의 항해와 운항을 담당하고,
기관부는 엔진과 발전기 등 기계 전반을 관리한다.
쉽게 말하면 하나는 배를 ‘움직이는 쪽’이고, 다른 하나는 배를 ‘돌아가게 하는 쪽’이다.
이 선택은 단순히 현재의 업무만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나중에 배를 내렸을 때 이어지는 길에도 영향을 준다.
갑판부는 해운, 운항, 관리 쪽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고,
기관부는 기술 기반의 산업으로 확장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 선택은 생각보다 길게 이어진다.
그리고 또 하나, 사관과 부원의 구분이 있다.
이건 구조적으로 보면 군대의 장교와 병의 차이에 가깝다.
사관은 면허를 기반으로 한 전문 직군으로,
선장과 항해사, 기관사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해양 계열 학교를 졸업하거나 별도의 과정을 거쳐 면허를 취득한 뒤,
3등 항해사나 기관사로 시작해 점차 진급하는 구조다.
반면 부원은 사관을 제외한 인력으로, 비교적 진입 장벽이 낮다.
일정 교육을 이수하면 승선이 가능하지만,
역할과 책임의 범위는 사관과 다르다.
최근 상선에서는 외국인 부원의 비중이 높아져 한국인 부원을 보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흥미로운 점은, 상선과 어선 모두 직급 구조 자체는 비슷하지만
운영 방식은 다르다는 것이다.
상선은 정해진 당직과 역할에 따라 업무가 나뉘지만,
어선은 조업이 시작되면 선장부터 모든 선원이 작업에 투입된다.
같은 ‘배’라는 공간이지만, 작동 방식은 전혀 다르다.
여기까지가 선택의 문제라면, 그 다음은 과정의 문제다.
많은 사람들이 배를 타는 것을 단순하게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일정한 자격과 절차가 필요하다.
특히 상선의 경우 사관으로 승선하기 위해서는 교육과 면허가 필수다.
한국해양대학교와 같은 해양 계열 대학이나 해사고등학교 과정을 거치거나,
일반 대학 졸업 후 오션폴리텍과 같은 과정을 통해 진입할 수 있다.
이후에는 국가시험인 해기사 시험을 통해 면허를 취득해야 하고,
국제 기준에 맞는 안전교육과 직무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이 과정은 대부분 한국해기연수원과 같은 기관에서 이루어진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배에 오를 수 있다.
그래서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드라마 속 장면처럼 결심 하나로 배에 오르는 일은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물론 일용직 형태로 작은 어선을 타는 것은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직업으로서’ 배를 탄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그 안에는 선택해야 할 방향이 있고, 준비해야 할 과정이 있으며,
무엇보다 그 선택의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 시간이 따라온다.
배를 탄다는 것은 단순한 결심이 아니라,
여러 갈림길을 지나 하나의 방향을 정하는 일에 가깝다.
그리고 그 방향은 생각보다 오래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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