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탄다는 것은 어쩌면 세상을 두 가지로 나누는 일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가장 단순한 사고방식은 모든 것을 둘로 나누는 것이다.
이것과 저것, 안과 밖, 낮과 밤처럼 말이다.
철학에서는 그것을 음과 양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물론 세상이 단 두 가지로만 설명될 수는 없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둘로 나눈다는 것은 서로 다른 방향에 서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배를 탄다는 것이 바로 그런 일이라고 생각한다.
세상과 반대편에 서는 일.
육지의 시간과는 다른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일 말이다.
배를 타기 시작하면 삶의 선택들도 점점 극단적으로 변한다.
평범한 것들과 멀어지고, 대신 그와 비슷한 것들 속에서 만족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사람 냄새 나는 거리 대신 파도 소리에 익숙해지고,
북적이는 도시 대신 끝없이 반복되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지구는 바다가 약 71%, 육지가 약 29%라고 한다.
숫자로만 보면 세상은 바다가 더 넓다. 하지만 인간은 대부분 육지에 산다.
물속 생물을 제외하면 결국 사람은 땅 위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바다에는 정말 많은 것이 없는 대신, 또 육지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깊게 깔린 밤하늘의 별들, 바다 위에 길게 부서지는 달빛,
매일 다른 얼굴로 타오르는 노을 같은 것들이다.
육지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들이다.
항해를 오래 하다 보면 그런 것들을 보며 스스로를 위로하게 된다.
오늘도 똑같은 바다 위에 있지만, 그래도 하늘은 아름답다고.
그래도 저 달빛은 육지보다 선명하다고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이 있어도 없는 것들은 끝내 채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긴 항해를 마치고 휴가를 내려오면 세상에는 늘 새로운 것들이 생겨 있다.
내가 처음 배를 탔던 것은 벌써 25년 전이다.
그때는 기본적으로 짧아도 6개월씩 승선했고, 한 달 남짓 휴가를 받곤 했다.
그마저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많이 나아져서 보통 4개월 정도 승선하고 두 달 가까이 쉬기도 한다.
선박에서도 스타링크로 인터넷이 되고, 예전과 비교하면 환경은 정말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배를 타는 사람이 육지 사람들과
같은 시간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배가 싫어 떠났다가도 결국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오랫동안 바다의 시간에 익숙해진 사람은 육지의 속도에 완전히 적응하기 어렵다.
내가 살아온 시간만 해도 삐삐가 있었고, 씨티폰이 나왔고,
휴대폰과 스마트폰으로 세상이 바뀌는 과정을 전부 지나왔다.
그런데 요즘 세상은 그보다 훨씬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한 번은 휴가를 내려 친구 차에 짐을 싣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차가 천천히 앞으로 움직였다.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리모컨으로 차를 조금 이동시키는 기능이었다.
트렁크를 여는 것처럼 버튼 하나로 차가 움직이는 모습이 꽤 낯설었다.
배에서는 자율주행 이야기를 듣긴 했었다.
6G 기반 통신망이 갖춰져야 가능하다느니,
외국에서 시험 중이라느니 하는 이야기들 말이다.
그런데 육지에서는 이미 완전하지는 않아도 단계적으로 현실이 되어 있었다.
나는 차에 관심이 많은 사람도 아닌데, 그 순간 이상하게 조금 충격을 받았다.
배를 타고 있으면 세상에서 조금씩 뒤처지고 있다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어쩌면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것인지도 모르겠다.
배를 탄다는 것은 단순히 직업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
1년, 2년씩 승선을 반복하다 보면 육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간격은 조금씩 벌어진다.
친구들과 대화할 때도, 세상의 흐름을 따라갈 때도, 어느 순간 미묘한 거리감이 생긴다.
사람들은 아직도 선원은 돈을 많이 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요즘 선원의 급여가 그렇게 높은 편은 아니다.
육상처럼 파업을 통해 목소리를 낼 수도 없고,
제조업도 서비스업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있다 보니
경제가 성장하는 속도만큼 임금이 오르지도 않았다.
세상의 돈과 기회는 대부분 육지에 있다.
바다는 비교적 안정적일 뿐이다.
누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선원이 돈을 많이 버는 게 아니라, 쓸 곳이 없어서 모이는 것뿐이다.”
조금 씁쓸했지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물론 배를 타는 삶에도 좋은 점은 많다.
바다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도 있고, 긴 휴가도 있으며,
육지에서는 느끼기 힘든 고요함도 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자신도 모르게 포기하게 되는
기회들이 있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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